가을 대회 목표를 봄에 정해두고 여름을 보낸 분들이 지금쯤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폭염과 장마, 휴가와 야근을 지나고 나니 계획표와 실제 기록이 꽤 벌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회 접수는 이미 끝났고, 목표는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 판단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결손을 감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합니다. 둘째, 남은 기간에 메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합니다. 셋째, 목표를 낮추는 것과 종목을 바꾸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선택입니다.

1. 가을 대회 목표, 먼저 결손을 숫자로 확인합니다
가을 대회 목표를 다시 잡는 첫 단계는 현재 위치 확인입니다. “여름에 많이 못 뛰었다”는 느낌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러닝 앱이나 워치의 기록을 열어 두 가지만 확인하세요.
월간 누적 거리와 가장 길게 뛴 거리입니다. 계획했던 6~8월 월평균과 실제 월평균을 비교하면 결손의 크기가 바로 보입니다. 계획의 80% 이상을 채웠다면 목표를 그대로 가도 됩니다. 60~80%라면 조정이 필요합니다. 60% 아래라면 목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2. 지구력은 남아 있고, 속도는 먼저 사라집니다
가을 대회 목표를 조정할 때 알아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몇 주 쉬었다고 그동안 쌓은 것이 다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유산소 기반은 비교적 오래 유지되는 반면, 속도 감각과 젖산 처리 능력은 상대적으로 빨리 떨어집니다.
그래서 여름을 놓쳤다면 대개 “완주는 되는데 목표 페이스가 안 되는” 상태입니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페이스 목표를 조정하면 대회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 현재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5km나 10km를 전력으로 한 번 뛰어보고 VDOT 기록 환산법으로 풀코스 예상 기록을 계산해 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합니다.
3. 남은 기간에 메울 수 있는 것
가을 대회 목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남은 기간이 결정합니다. 대회까지 8주 이상 남았다면 아직 유의미하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장거리 지구력은 LSD 장거리 훈련으로 3~4주면 체감할 만큼 회복됩니다. 주당 거리 증가는 10% 이내로 지키는 것이 전제입니다.
4~6주 남았다면 새로 쌓기보다 가진 것을 정리하는 시기입니다. 장거리 한두 번으로 거리 감각만 확인하고, 목표 페이스로 짧게 달리며 리듬을 맞춥니다. 이 시점에 급하게 주행거리를 늘리면 부상으로 대회 자체를 못 나가게 됩니다. 마일리지 증가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리한 만회보다 훨씬 이득입니다.
4. 메울 수 없는 것은 인정합니다
3주 이내로 남았다면 훈련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 시기는 이미 테이퍼링 구간입니다. 여기서 벼락치기 장거리를 하나 넣는 것은 기록을 올리는 게 아니라 완주 확률을 떨어뜨리는 선택입니다.
가을 대회 목표를 다시 잡을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이것입니다. 남은 기간이 짧을수록 목표를 바꾸고, 훈련은 바꾸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면 부상만 남습니다.
5. 가을 대회 목표를 조정하는 세 가지 방법
페이스 목표 낮추기. 가장 단순합니다. 서브4를 4시간 15분으로, 서브5를 5시간 20분으로 옮깁니다. 현재 5km 기록을 환산한 값에 여유를 5~10% 더하면 현실적인 선이 나옵니다. 기준표는 마라톤 목표 페이스표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종목 바꾸기. 풀코스를 하프로 내리는 것은 후퇴가 아닙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의 풀코스는 회복에 몇 주가 걸리고, 그 사이 겨울 훈련까지 밀립니다. 하프로 잘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을 온전히 준비하는 편이 1년 단위로 보면 훨씬 빠릅니다.
목표의 성격 바꾸기. 기록 대신 다른 걸 목표로 삼는 방법입니다. 전 구간 같은 페이스로 달리기, 걷지 않고 완주하기, 후반이 전반보다 빠른 네거티브 스플릿 만들기. 기록이 안 나올 대회에서 오히려 배울 것이 많은 방식입니다.

6. 대회 당일에 다시 흔들리지 않으려면
가을 대회 목표를 조정해 두고도 출발 신호가 울리면 주변 페이스에 휩쓸려 원래 목표대로 나가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30km에서 대가를 치릅니다.
이걸 막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조정한 페이스를 구간별 통과 시간으로 적어 손목이나 배번에 붙여두는 것입니다. 머릿속 목표는 흔들리지만 종이에 적힌 숫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반 통제 방법은 대회 페이스 전략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7. 이번 시즌을 다음 시즌의 자료로 씁니다
여름 훈련이 무너진 이유를 기록해 두세요. 더위였는지, 일정이었는지, 애초에 계획이 과했는지. 대부분의 경우 원인은 의지가 아니라 계획의 난이도에 있습니다.
더위 자체가 문제였다면 다음 여름에는 열순응 훈련을 미리 넣거나 시간대를 옮기는 것으로 상당 부분 해결됩니다. 훈련 페이스 기준을 다시 세우고 싶다면 VDOT O2 계산기가 유용합니다.
목표를 낮추는 결정은 포기가 아니라 계산입니다. 이번 대회 하나가 아니라 다음 봄까지 보고 정하시면 답이 훨씬 명확해집니다.
부상 없이, 안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