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달리는 자의 자유 — 『고독한 장거리 주자』가 말하는 것 (러닝의 본질 ④)

러닝의 본질 · 에세이 시리즈 ④

요즘은 혼자 있기가 참 어렵습니다. 잠깐의 정적도 못 견뎌 우리는 습관적으로 화면을 켭니다. 알림, 메시지, 피드 — 누군가와 늘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나 자신과 연결되는 시간은 거의 없죠. 그런데 러너에게는 그 귀한 시간이 매일 주어집니다. 신발 끈을 묶고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요.

이번 편의 안내자는 조금 뜻밖입니다. 러닝 코치도, 철학자도 아닌 한 편의 소설입니다. 앨런 실리토(Alan Sillitoe)가 1959년에 쓴 단편 『고독한 장거리 주자(The Loneliness of the Long-Distance Runner)』. 20세기 영미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달리기의 ‘혼자됨’이 왜 나약함이 아니라 자유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소년원의 한 소년, 그리고 달리기

주인공은 스미스라는 가난한 노동계급 소년입니다. 좀도둑질을 하다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죠. 그런데 그에게 장거리 달리기 재능이 있다는 걸 소년원장이 발견합니다. 원장은 스미스를 훈련시켜 다른 학교와의 크로스컨트리 대회에서 우승시키려 합니다. 소년의 달리기를 자신의 성과로 만들려는 것이죠.

스미스는 매일 새벽 홀로 들판을 달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아무도 그를 통제할 수 없는 그 시간에 그는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느낍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원장도, 규율도, 사회의 시선도 그의 머릿속에 들어올 수 없었으니까요.

달릴 때, 나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첫 사람이 된다

이 소설의 가장 유명한 대목에서 스미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벽에 홀로 달려 나갈 때면, 마치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인간, 혹은 마지막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그 순간 다른 누구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발밑의 길만 남는다고요.

달리기 시작하면, 나는 온전히 나 혼자다. 그 고독 속에서 나는 비로소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영어 제목의 ‘loneliness’는 흔히 ‘외로움’으로 옮겨지지만, 스미스의 그것은 결핍의 외로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선택한 홀로 있음, 즉 ‘고독(solitude)’에 가깝습니다. 외로움은 채워지길 바라는 빈자리지만, 고독은 나를 되찾는 충만한 공간입니다. 러너가 매일 만나는 것이 바로 이 후자예요.

지지 않기 위해, 그는 스스로 졌다

소설의 결말은 강렬합니다. 대회 당일, 스미스는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립니다. 결승선이 코앞이고 우승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는 원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부러 멈춰 서서, 다른 주자가 자신을 앞질러 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왜 다 이긴 경기를 포기할까. 하지만 스미스에게 그 우승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원장의 것이었습니다. 시스템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겨주는 순간, 그는 그들의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를 거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남는 길을 택합니다. 몸은 졌지만, 그가 지키려던 자유와 존엄은 이긴 것이죠.

혼자 달리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

물론 함께 달리는 즐거움도 큽니다. 러닝 크루, 페이스메이커, 대회의 열기 — 다 소중하죠. 하지만 실리토의 소설이 일깨우는 건, 가끔은 온전히 혼자 달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폰도 빼고, 기록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나와 길만 남겨두는 달리기. 그 고독 속에서 우리는 평소 소음에 묻혀 있던 진짜 내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앞선 조지 시언 편에서 말한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여기서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번 주엔, 혼자

그러니 이번 주 한 번은 약속도 크루도 없이, 혼자 달려보세요. 처음엔 심심하고 어색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몇 분 지나면 스미스가 말한 그 감각 — 세상에 나 홀로 던져진 듯한 자유가 슬며시 찾아올 겁니다. 그 자유가 좋아서, 당신은 또 혼자 신발 끈을 묶게 될지도요.

혼자 달리는 자는 외롭지 않습니다. 자유로울 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자유로운 몸이 부딪히는 벽 — “한계는 정말 몸에 있는가, 마음에 있는가”를 4분의 벽과 킵초게의 이야기로 풀어보겠습니다.

부상 없이, 안런 하세요.

📎 참고 · 고독한 장거리 주자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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