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의 본질 · 에세이 시리즈 ①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립니다. 이불 속은 따뜻하고 창밖은 아직 어둡습니다. 굳이 지금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주섬주섬 러닝화를 신고 문을 나섭니다. 첫 1km는 늘 후회스럽습니다. 다리는 무겁고 호흡은 엉키고, ‘오늘은 왜 나왔지’ 싶죠.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풀리고, 발이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 머릿속 소음이 조용해지고 세상이 아주 단순해집니다. 그 순간이 좋아서 나는 또 달립니다.
대회 기록도, 러닝화 스펙도, 다이어트도 아닌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은 대체 왜 달리는 걸까요. 이 시리즈는 그 질문을 붙들고 갑니다. 첫 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또 깊습니다. 우리는 원래 달리도록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래 달리기’로 살아남은 동물이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본 투 런(Born to Run)』과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의 『Why We Run』이 공통으로 던지는 통찰이 있습니다. 인간은 단거리에선 형편없는 동물이라는 것. 100m를 세계기록으로 달려도 웬만한 사슴, 심지어 다람쥐한테도 집니다. 우리에겐 날카로운 발톱도, 송곳니도, 두꺼운 근육도 없습니다.
그런데 ‘멀리, 오래’ 달리는 능력만큼은 지구 최상위권입니다. 여기에 인류 생존의 비밀이 숨어 있어요. 비결은 크게 셋입니다.
- 땀 — 인간은 온몸의 피부로 땀을 흘려 달리면서 체온을 식힙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헐떡임(panting)으로만 열을 식히기 때문에, 뛰면서 동시에 냉각을 할 수 없어 금세 과열됩니다.
- 두 발과 스프링 같은 몸 — 곧게 선 자세, 탄성 에너지를 저장했다 튕겨 주는 아킬레스건, 달릴 때만 강하게 작동하는 큰볼기근(엉덩이 근육). 우리 몸은 걷기보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구조를 곳곳에 갖고 있습니다.
- 호흡과 보폭의 분리 — 네발 동물은 보통 한 걸음에 한 번만 숨을 쉬지만, 두 발로 서서 상체가 자유로워진 인간은 호흡 리듬을 자유롭게 조절합니다. 그래서 오래 버팁니다.
그래서 인류의 조상은 지구력 사냥(persistence hunting)을 했습니다. 활도 덫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한낮의 뙤약볕 아래 빠른 사슴이나 영양을 몇 시간이고 쫓았습니다. 동물은 순간 속도로 달아나지만 곧 과열돼 멈춰야 하고, 인간은 땀을 흘리며 지치지 않고 계속 따라붙습니다. 결국 사냥감이 열사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오늘날에도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먼, 멕시코 협곡의 타라우마라족에게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달리기는 헬스 트렌드로 발명된 취미가 아닙니다. 수십만 년 동안 그것은 밥이자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러닝화를 신고 한강을 달릴 때, 몸속에서는 그 오래된 설계도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진화는 달리기를 ‘기분 좋은 일’로 만들어 두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연결이 생깁니다. 만약 달리기가 생존에 필수였다면, 진화는 그 고된 행동을 ‘보상’으로 강화했을 겁니다. 뙤약볕에 몇 시간을 달리는 일이 순전히 괴롭기만 했다면, 아무도 사냥을 나가지 않았을 테고 그런 유전자는 진작 사라졌겠죠.
실제로 일정 강도로 20~30분 이상 달릴 때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그 흔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래 달린 몸에 진정감과 잔잔한 행복감을 흘려보내는 뇌의 보상 시스템 — 이건 우리를 계속 달리게 만들기 위해 진화가 심어 둔 당근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 달리고 나서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그 느낌은 착각이 아니라 수십만 년 묵은 생물학적 설계입니다. (이 메커니즘은 러너스 하이의 과학을 다룰 6편에서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달리는 법’이 아니라 ‘달리는 이유’를 잃어버렸다
문제는 현대의 삶입니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 의자와 화면이 우리에게서 움직일 이유를 전부 가져가 버렸어요. 몸은 여전히 사바나를 달리도록 설계돼 있는데,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그 설계도가 갈 곳을 잃습니다. 현대인의 만성적인 무기력·불안 중 일부는, 어쩌면 쓰이지 못한 달리기 본능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달리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일은, 새로운 능력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것을 되찾는’ 일에 가깝습니다. 처음 몇 주는 몸이 낯설어하지만, 이내 발이 리듬을 기억해 냅니다. 마치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듯이요.
‘왜’를 아는 러너가 더 오래 달린다
이 사실이 실전에서 왜 중요할까요. 초보 시절 우리는 대개 바깥의 이유로 달립니다. 살을 빼려고, 대회 메달 때문에, 남들이 다 하니까. 그런데 이런 동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목표를 이루면 멈추고, 못 이루면 실망하며 멈추죠. 매년 1월 러닝을 시작했다가 3월이면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반면 “나는 원래 달리도록 만들어진 존재다”라는 감각으로 달리는 사람은 다릅니다. 기록이 안 나오는 날에도, 나갈 대회가 없는 계절에도 계속 달립니다. 달리기가 성취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됐기 때문이에요. 러닝계의 철학자로 불린 의사 조지 시언(George Sheeha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달리기는 현대 문명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 하나를 돌려준다고 — 바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라고요. 달리는 30분 동안만큼은 나는 직함도, 역할도, 알림도 없는 그냥 한 사람의 러너입니다.
오늘, 이유 없이 한 번 달려보기
그러니 이번 주엔 목표 페이스도, 거리 목표도 잠시 내려놓아 보세요. 시계를 보지 말고, 그냥 몸이 원래 알고 있던 리듬에 나를 맡겨 20분만 달려보는 겁니다. 힘들면 걷다가 다시 뛰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수십만 년 된 그 감각에 몸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니까요.
아마 어느 순간, 머리로 이해하던 이 글의 문장들이 몸으로 이해되는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발이 저절로 굴러가고, 호흡이 리듬을 타고,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그 순간 — 그때 당신은 이미 답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 첫 번째 답은 이것입니다. 달리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다음 편에서는 소설가 하루키 무라카미가 30년 넘게 매일 달리며 몸으로 새긴 문장 —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의 의미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부상 없이, 안런 하세요.
📎 참고 · 지구력 사냥 (위키백과)
📚 러닝의 본질 — 연재 목차
- 우리는 왜 달리는가 — 인간은 달리도록 태어났다 ← 지금 읽는 편
-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무라카미)
- 달리기는 나에게 ‘시간’을 돌려준다 (조지 시언)
- 혼자 달리는 자의 자유 — 고독의 의미 (예정)
- 한계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예정)
- 러너스 하이는 왜 오는가 — 본질의 과학 (예정)
- 결국, 달리기는 삶의 은유다 (예정)
다음 편 ▶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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