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의 본질 · 에세이 시리즈 ②
마라톤 후반의 ‘벽’을 넘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그 답을 무라카미 달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이라면 30km 지점의 그 순간을 압니다. 다리는 남의 것처럼 무거워집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온몸이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죠. 여기서 어떤 러너는 무너지고, 어떤 러너는 나아갑니다. 둘의 차이는 체력이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를 평생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 소설가 하루키 무라카미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은 무라카미 달리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다룹니다. (지난 편에서는 인간이 달리도록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라카미 달리기의 시작 — 서른셋에 시작한 소설가
무라카미는 서른세 살, 재즈 카페를 접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면 오히려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 뒤로 그는 거의 매일 10km를 달렸고, 수십 번의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 심지어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습니다.
그가 쓴 러닝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래서 단순한 운동 기록이 아닙니다. 달리기와 글쓰기, 그리고 삶이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것을 30년간 몸으로 증명한 기록입니다. 그는 소설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재능·집중력과 함께 ‘지속력’을 꼽았는데, 그 지속력을 매일 아침 달리기에서 길렀다고 말합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무라카미가 달릴 때 스스로에게 되뇌는 만트라예요.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이 짧은 문장에 러닝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고통(pain)은 사실입니다. 30km 지점의 무거운 다리, 타들어 가는 폐 —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신호예요. 하지만 괴로움(suffering)은 다릅니다. 그 고통에 “왜 이런 걸 하고 있지”, “난 안 될 거야”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 그건 내 마음이 선택하는 일입니다.
같은 통증을 느껴도, 어떤 러너는 “몸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어떤 러너는 그 통증을 재앙으로 키웁니다. 무라카미가 말하는 성숙한 러너란, 고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거기에 불필요한 괴로움을 보태지 않는 사람입니다.
재능보다 꾸준함 — 매일 같은 거리를 달리는 이유
무라카미의 러닝에서 배울 두 번째는 극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는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고 무리해서 더 달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지점에서 멈췄어요. 그래야 다음 날도 즐겁게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초보 러너가 가장 자주 실수하는 지점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의욕이 앞선 날 10km를 무리하게 뛰고, 다음 날 몸이 뻐근해 며칠을 쉬고, 그러다 흐지부지 그만두는 패턴. 무라카미는 정반대로 갑니다. 매일 조금씩, 오래. 그는 재능이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꾸준한 사람이 결국 멀리 간다는 것을 30년의 러닝으로 보여줬습니다.
달리기는 ‘텅 빈 나’를 만나는 시간
무라카미는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별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굳이 말하자면 ‘텅 빔(void)’을 얻기 위해 달린다고요. 머릿속을 채운 잡념과 소음이 발걸음의 리듬에 씻겨 나가고, 남는 것은 오직 달리는 몸과 호흡뿐인 상태. 많은 러너가 “달리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말하는 그 감각의 정체입니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까지 정해두었다고 합니다. “하루키 무라카미 —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기록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고통 앞에서 괴로움에 지지 않고, 끝까지 자기 리듬으로 달렸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태도입니다.
다음에 벽을 만나면
그러니 다음에 러닝 중 힘든 순간이 오면, 딱 한 번 실험해 보세요. 통증을 없애려 하지 말고, “지금 다리가 무겁다”라는 사실만 담담히 관찰해 보는 겁니다. 거기에 “못 하겠다”는 이야기를 붙이지 않고요. 신기하게도, 괴로움을 덜어내는 것만으로 고통은 훨씬 견딜 만해집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이 문장은 사실 러닝을 넘어 삶 전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달리기를 “현대 문명이 앗아간 시간을 되찾는 일”이라고 말한 러닝계의 철학자, 조지 시언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부상 없이, 안런 하세요.
📚 러닝의 본질 — 연재 목차
- 우리는 왜 달리는가 — 인간은 달리도록 태어났다
-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무라카미) ← 지금 읽는 편
- 달리기는 나에게 ‘시간’을 돌려준다 (조지 시언)
- 혼자 달리는 자의 자유 — 고독의 의미 (예정)
- 한계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예정)
- 러너스 하이는 왜 오는가 — 본질의 과학 (예정)
- 결국, 달리기는 삶의 은유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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